John Hicks
시대를 관통한 손
시대를 관통한 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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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 힉스
존 힉스
1941~2006
1941~2006

John Hicks는 1941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감리교 목사였고, 갓난아기 때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.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도 거기서였다.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를 치던 아이가 10대 중반엔 세인트루이스로, 1963년엔 뉴욕으로 건너간다. 이 정도 이력만 봐도 그가 왜 가스펠과 블루스 특유의 질감을 놓지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.
뉴욕에 도착한 60년대는 재즈 신 전체가 요동치던 시기로, 스윙과 비밥은 이미 한물간 취급을 받았다. 하드밥은 확고한 주류였으며, 옆에선 모달 재즈와 프리 재즈가 새로운 문을 열고 있었다. Hicks는 이 한복판에서 커리어를 쌓았다. Art Blakey's Jazz Messengers에서는 하드밥 특유의 밀어붙이는 힘과 블루스 감각을 몸에 익히고, Betty Carter와 일하면서는 보컬리스트를 받쳐주면서도 즉흥을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을 배웠다. 그 뒤로 Woody Herman 빅밴드, Pharoah Sanders, Arthur Blythe, David Murray와의 작업이 이어지면서 훨씬 자유로운 어법까지 흡수했다.
그래서 Hicks의 스타일은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. 비밥 이후 세대다운 빠른 라인이 나오다가도 하드밥의 걸쭉한 스윙이 섞이고, 가스펠에서 온 화성이 불쑥 끼어든다. 필요하면 프리 재즈 쪽 어법도 꺼내 쓴다. 여러 시대를 거치며 익힌 어휘들을 한 곡 안에 아무렇지 않게 섞어버렸기 때문에, 스탠더드를 연주해도 옛날 곡처럼만 들리지 않는다.
John Hicks는 1941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감리교 목사였고, 갓난아기 때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.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도 거기서였다.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피아노를 치던 아이가 10대 중반엔 세인트루이스로, 1963년엔 뉴욕으로 건너간다. 이 정도 이력만 봐도 그가 왜 가스펠과 블루스 특유의 질감을 놓지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.
뉴욕에 도착한 60년대는 재즈 신 전체가 요동치던 시기로, 스윙과 비밥은 이미 한물간 취급을 받았다. 하드밥은 확고한 주류였으며, 옆에선 모달 재즈와 프리 재즈가 새로운 문을 열고 있었다. Hicks는 이 한복판에서 커리어를 쌓았다. Art Blakey's Jazz Messengers에서는 하드밥 특유의 밀어붙이는 힘과 블루스 감각을 몸에 익히고, Betty Carter와 일하면서는 보컬리스트를 받쳐주면서도 즉흥을 놓지 않는 균형 감각을 배웠다. 그 뒤로 Woody Herman 빅밴드, Pharoah Sanders, Arthur Blythe, David Murray와의 작업이 이어지면서 훨씬 자유로운 어법까지 흡수했다.
그래서 Hicks의 스타일은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. 비밥 이후 세대다운 빠른 라인이 나오다가도 하드밥의 걸쭉한 스윙이 섞이고, 가스펠에서 온 화성이 불쑥 끼어든다. 필요하면 프리 재즈 쪽 어법도 꺼내 쓴다. 여러 시대를 거치며 익힌 어휘들을 한 곡 안에 아무렇지 않게 섞어버렸기 때문에, 스탠더드를 연주해도 옛날 곡처럼만 들리지 않는다.

